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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표현, 환자 낙인 줄이고 동기 부여하는 언어 전략 필요"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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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관련 용어에 대한 인식과 반응을 분석한 국내 첫 연구가 발표됐다. 30일 비만대사연구학술지(archives of obesity and metabolism, aom)에 게재된 '비만 관련 용어에 대한 인식 및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비만 여성과 의료진 모두 '비만병', '비만병환자'처럼 질병을 강조하는 표현보다 '건강체중초과', '체질량지수가 높은 사람' 등 중립적이고 완곡한 표현을 더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를 이끈 가천대 길병원 김경곤 교수(제1저자)와 건양의대 강지현 교수(교신저자)는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환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환자의 감정과 반응을 고려한 용어 사용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두 교수와 함께 이번 연구의 의의와 용어 선택이 환자 치료와 의료진과의 소통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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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비만 낙인 줄이려면 용어부터 바꿔야… '이 용어' 가장 긍정적 ①

q. 이번 연구의 의의를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강지현 교수: 비만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이 실제로 환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늘 궁금했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사용하는 말에 따라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대한비만학회에서 '비만병학'이라는 교과서를 새롭게 만들었는데, 이런 용어들이 환자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전달되는지, 어떤 인상을 주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문제의식이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김경곤 교수: 영어권에서는 비만 표현이 낙인을 유발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오랜 시간 다양한 표현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비만이 있는 사람(person with obesity)'처럼 사람을 먼저 언급하는 '사람 중심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고, 비만 관련 논문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의무화된 상황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비만이 있는 사람' 같은 표현이 진료지침 등에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과연 이런 방식이 국내의 문화적∙언어적 특성에 적절한지, 낙인을 줄이는 데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검토가 필요했다. 이번 조사는 그런 맥락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실제 인식을 확인하려는 첫 시도로,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q. 연구 결과를 의료 현장이나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김경곤 교수: 사실 이번 연구 결과가 당장 어떤 용어를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어 표현에 대한 조사나 근거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어떤 표현이 낙인감을 덜 유발하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처음으로 확보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만병'이라는 용어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됐다는 사실이다. 비만은 bmi 25kg/㎡ 이상이라는 기준으로 진단되지만, 그 안에는 경미한 상태부터 고위험군까지 다양한 단계가 포함된다. 모든 경우를 하나로 묶어 '병'으로 지칭하는 것은 현상을 단순화하거나 낙인을 강화할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 지난해 열린 미국비만학회 학술대회에서는 비만 관련 용어를 논의하는 데서 나아가, 환자 단체들과 함께 '비만 치료제' 명칭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비만 용어 사용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강지현 교수: 이번 연구에서 환자들은 '비만'이라는 용어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영어권 논문을 살펴봐도 '비만(obesity)'보다는 '체중이 높다'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러한 표현들을 진단이나 의학 용어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에 대한 정리나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용어에 대한 인식 차이를 파악하고, 앞으로 논의를 위한 기초 자료를 마련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어떤 표현이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며, 앞으로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q. 중립적 표현 사용이 진료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시나요?
강지현 교수: 이번 연구 결과를 먼저 접하고 나니, 진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실제로 최근에는 환자에게 "bmi가 25kg/㎡ 이상이니 비만입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건강 체중을 조금 초과하신 상태입니다"라고 표현해 본 적이 있다. 환자 반응을 명확히 확인하긴 어렵지만, 이런 표현이 상대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비만병'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한 배경에는 비만을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질환으로 인식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고려는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의사의 용어 선택이 낙인감을 유발해 환자가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게 된다는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질병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 접근성과 심리적 수용성을 함께 고려하는 언어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bmi 25 kg/㎡ 이상이라는 기준만으로 모두를 '비만병 환자'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단지 표현의 선호도를 조사한 차원을 넘어, 의료진 스스로도 용어 사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경곤 교수: 비만 환자를 처음 진료할 때 "언제부터 비만해졌나요?"라고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언제부터 체중이 갑자기 늘기 시작했나요?"처럼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낙인을 유발하는 표현은 환자에게 책임을 묻는 뉘앙스를 담고 있어 치료 협력관계를 해칠 수 있다.

비만은 약물이나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는 동기를 갖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책임을 묻는 표현보다 협력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소통 방식이 도움 될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가 어떤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하시나요?
김경곤 교수: 이번 연구는 어디까지나 출발점이다. 특히 이번 조사는 20~50대 여성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향후에는 남성, 다양한 연령층, 소아청소년을 포함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참여자들이 특정 용어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를 자유롭게 서술하도록 했고, 감정 반응에 대한 평가도 함께 진행했지만, 세부 요인들을 연결하는 등 충분히 깊이 있게 분석하진 못했다. 향후 연구에서는 세부 요인들을 더욱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낙인감이 있는 표현이 오히려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이러한 표현이 비만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치료 의지나 행동 변화의 동기를 약화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만하지 않은 사람의 예방에는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비만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적절한 접근이 아니다.

앞으로는 '어떤 용어가 긍정적 동기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보다 정교한 연구가 이어지길 바란다. 이번 조사가 바로 그런 후속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 회장으로서 이번 연구를 한자 문화권을 공유하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국가들로까지 확장해 나가고 싶다. 언어적 특성과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한 공동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넓히는 데 이번 연구가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지현 교수: 이번 연구는 '비만인'이나 '비만'이라는 표현이 실제 당사자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또 의료진은 이런 용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진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 하나가 환자의 마음가짐과 치료 협력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고, 앞으로는 표현 하나도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주제를 다룬 연구가 많지 않다 보니,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환자의 감정이나 반응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사는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더 많은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